Friday, July 25, 2025

독서칼럼


[염혜원의 이책저책] 302호의 생일, 기억나요?관리자2025-07-25




302호의 생일, 기억나요?

글_염혜원(그림책 작가) 
 
 


“‘욕조 없는 새 집, 낯설기만 한 새 동네.
하지만 함께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곳은 금세 보금자리가 된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따스히 비추는 두 그림책.”


 



『302호의 생일』, 레베카 스테드 저, 염혜원 역, 그레이시 장 그림/만화, 위즈덤하우스, 2025『기억나요?』, 시드니 스미스 저, 김지은 역, 책읽는곰, 2024





 
어릴 때 우리 집은 늘 이사를 다녔다. 이사 갈 때마다 새집은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집은 산꼭대기 에 어떤 집은 새로 지어진 아파트였다. 어떤 집은 화장실에 욕조가 없었고 어떤 집엔 커다란 벚나무가 있었다. 서울의 가장자리를 동서남북으로 종횡하며, 몇 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데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와 동생이 있었다.

『302호의 생일』에서 아이는 아빠와 새 집에 이사를 왔다. 아이는 이전 동네의 작은 미끄럼틀이나, 이 전 집의 크고 파란 욕조, 옷장 안에 냄새 같은 것이 그립다. 하지만 아빠는 새 아파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생일 케이크를 마련하기도 하고, 멋진 무지개를 방에 그려주고, 기차도 되어주며, 팬케이크와 프렌치 토스트도 척척 만들어준다. 새 집에 이사 갔지만 아이에게는 아빠가 있다. 낯선 곳을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만들어주는 아빠. 

 『기억나요?』의 주인공은 엄마와 아들이다. 이들은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도시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그들에게는 아빠와 함께했던 좋은 기억들이 많다. 소풍을 갔었고 자전거를 배웠다. 그러나 이젠 아빠와 헤어져 먼 곳의 새 아파트에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 때다. 엄마와 단둘이서. 새 집에서 새벽에 눈을 뜬 아이는 새로운 기억을, 추억을 만들 준비가 되었다.

 『302호의 생일』에서 검은 볼펜으로 그려진 아이의 불 꺼진 방은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 만 같다. 그러다가, 책장을 넘겨 아빠가 아이를 업고 나오는 불 켜진 거실은 아빠의 등만큼이나 따뜻한 노란색이다. 그림을 그린 그레이시 장은 이 책에서는 이전의 책들과는 다른 미디엄을 선택했다. 볼펜 드로잉과 몇 가지 원색의 물감만으로 커다란 판형에 쓱쓱 그려진 그림들은 단순한 선과 최소한의 색깔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시드니 스미스의 책 『기억나요?』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누워있는 장면과 추억의 장면들이 교차한다. 아이와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 서로의 기억을 번갈아 떠올린다. 어두운 방에서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다가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천천히 이삿짐이 쌓여있는 방안에 아침 햇살이 들고 엄마와 아들 단 둘뿐이지만 그들은 걱정되거나 무섭지 않다. 서로가 함께해서일 것이다. 두 책 모두 희망 가득 찬 마법 같은 아침이 밝아오며 책장을 덮게 된다. 

이 책들은 이사 가는 날에 대한 책이어서 닮아 있기도 하지만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두 책 모두 한부모가정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엄마, 아빠, 아이들, 거기에 고양이나 강아지까지 더해지는 어떤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가족을 그리세요” 하면 생각나는 머리가 긴 예쁜 엄마와 키 큰 아빠, 귀여운 아이들…그러나 우리 삶에서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고, 또한 그 모습이 급격하게 바뀌어 가고 있다. 또 그 모습들이 다 제각각이고 다를지라도 그 가족이 불행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오래된 전래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새엄마는 무조건 아이들을 구박하고, 모든 아버지는 집안일엔 무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정의 모습은 하나의 전형이 아니라 다양하고, 가정의 행복이 가정의 형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림책 작가로 그러한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그림책에서 보여준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래서 조용히 한부모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두 책이 반갑다. 

글 작가인 레베카 스테드는 어린 시절 아빠와 보낸 반절의 시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302호의 생일』을  오랜 시간을 들여 구상하고 써냈다고 한다. 『기억나요?』의 작가 시드니 스미스 또한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고 그 기억을 그림책으로 풀어냈다고 들었다. 그러나 두 그림책 모두 한부모만 있다는 것이 결핍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빠와 딸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짐을 풀고, 새로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식사 메뉴를 만들었다. 엄마와 아들은 이삿짐을 싸서, 트럭에 싣고, 아주 먼 곳까지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이사를 하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었다. 새로 시작하는 그들에겐 과거의 추억도 아름답지만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할 아름다운 기억이 있는 것이다. 

새 집은 커다란 푸른 욕조도 없고, 낯선 도시의 작은 아파트일 수도 있다. 새 동네는 너무 높은 미끄럼틀이 있고 아침엔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시끄러운 곳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도 가족이 함께한다. 그 가족은 그들의 벽이고 지붕이고, 단단한 바닥이고 커다란 창문이 되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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